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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김범석
    독서 2022. 5. 6. 18:49

     

     나는 올해 초에 경계성종양을 진단받았다. 한 3년 전쯤인가... 발바닥쪽에 걸리적 거리는 느낌이들어 보니 조그맣게 돌기가 생겼다. 내가 그것을 인지했을 때는 여름즈음이었고 돌기가 생긴 부위가 슬리퍼에 자주 닿는 쪽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질 굳은살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돌기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사마귀인가 싶어 피부과에가서 냉동치료를 두어번 받았는데 큰 효과가 없었다. 냉동치료를 받고 괴사한 피부를 깎아내면 그 안에 묵직한 무엇인가가 만져졌다. 의사선생님말로는 사마귀라면 그 정도로 피부를 냉동시키고 살을 깎아내면 말끔한 살이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이건 아무래도 이상한데요... 의뢰서 써드릴테니 대학병원가셔서 진료 한번 받아 보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렇게 대학병원 피부과로 예약을 잡아 진료를 받으러갔다. 그때까지만해도 큰 병일까봐 걱정되기보다는 대학병원을 오가야 하는 귀찮음이 컸다. 피부과 교수는 내 설명과 진료의뢰서에 적힌 내용을 읽은 뒤 내 환부를 유심히 관찰했다. 자기가 보기에도 사마귀인것 같으니 냉동치료부터 진행해보자고 했고 진찰실을 나와 치료실의 레지던트에게 맡겨졌다. 레지던트는 내 환부를 칼로 약간 깎아보더니 이건 사마귀가 아닌것같다며 다시 교수를 데려왔다.

     

    "어 이건 좀 이상한데... 조직검사 한번 받으셔야겠는데요"

     

     조직검사...? 내가 진짜 뭔가 큰 병에 걸린건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레지던트는 준비해왔던 냉동치료 도구들을 다시 가져갔고 곧 바늘없는 주사기처럼 생긴 도구를 가져와 내 살을 채취해갔다. 조직검사는 생각보다 꽤 아팠는데 그 고통보다는 내가 큰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더 컸다. 2주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시 대학병원에 갔다. 별 거 아닐거라는 기대, 희망과는 달리 피부과 교수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음... 결과가 별로 안좋아요. 이제 추가적인 검사를 맡길건데 이건 그냥 육안으로봐도 확실해서..."

    "지금 봐서는 육종으로 보이는데... 악성인지 아닌지는 검사를 한번 더 맡겨봐야해요"

     

    "그럼 어떻게 치료해요?"

     

    "환부를 절제해야해요"

     

     육종이라는 병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병인지는 몰랐다. 찾아보니 일종의 피부암 같은거고 피부보다 좀 더 안쪽으로 근육쪽에 암이 생기면 육종, 그보다 더 안쪽으로 뼈쪽부터 생기면 골육종이라고 한단다. 비슷한 병에 걸린 연예인들도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얼핏 들어본 것 같았다. 병명을 알았고 치료하기위해서는 환부를 절제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피부과에서 성형외과로 이관되었다. 그 때 내 종양의 크기가 1~2센치정도 되었는데 보통 육종은 그보다 3센치정도의 여유분을 더 두고 살을 절제한다고 했다. 그리고 육종도 암이라 그런일은 드물지만 다른 곳에 전이가 되었는지도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

     

     그제서야 상황이 간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수술 후 거의 열흘정도는 입원을 해야하고 다시 걸으려면 최소 한달정도는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몸 안 다른곳에 전이가 되었으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새해부터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이직을 하자마자 바로 병가를 내야 한다는 사실도 꽤나 스트레스였다. 1월 초쯤에 정확히 병을 알게되고 한 달 정도는 CT, MRI를 찍으면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다른 쪽에 전이된것은 없었고, 육종 자체도 그렇게 깊지 않았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한달 반정도 병가를 낸 뒤, 2월 4일에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육종이 완전히 절제되었고 피부이식도 잘 되었다고 했다. 10일정도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나 같은 종류의 병은 수술해서 떼어낸 부위를 가지고 다시 조직검사를 한 뒤 정확하게 진단이 내려진다. 내가 걸린 융기성 섬유육종은 경계성 종양으로 단순 혹도 아니고 악성종양(암)도 아닌 그 사이 상태의 종양인데 사람마다 아주 천천히 자라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아주 작게 있다가 어느시점부터 급속하게 자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퇴원하는날 종양내과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 저는 어디가서 암에 걸린적 있다고 해야하나요 아니라고 해야하나요?"

     

     저런 질문을 한게 좀 웃기기도 한데 진심으로 궁금했다. 종양내과 교수는 갸웃하더니 뭐 사는데 큰 지장도 없을거고 안걸렸다고 하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수술일로부터 세 달 정도 지났는데 아직 절제된 부위에 피부가 완전히 재생되지 않아서 조금 더 회복해야하는 상태이다.

     

      이 책은 친한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내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사서 읽었다가 나에게도 의미가 있을것 같다며 선물해주었다. 종양내과 교수님이 그 동안 자기가 겪었던 환자에 관한 에피소드, 병원일에 대한 에피소드들로 엮어진 책이다. 한 2주 정도 병원신세를 지고 나서 읽으니 이 책에 나온 환자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더 잘 몰입이되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감동과 여운을 주었지만 특히 암 투병 환자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형제에게 "빌려간 내 돈갚아라" 라는 말을 남긴 편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나와 정반대로 대비되는 인물이어서 그런걸까.

     

     1월부터 그 난리를 치른 뒤, 내 자신이 꽤 많이 바뀐것 같다고 느낀다. 그 전에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물질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그런 측면으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회사도 옮긴것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큰 일을 겪은 지금, 그 전까지는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정말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다. 적당히 벌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 안에서 살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하게, 그렇게 사는게 맞지 않을까? 이전에는 모르는것이 있으면 궁금해서 찾아보고, 퇴근후에도 따로 공부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귀찮고 지치는 부분이 많다. 아마도 병치레를 하며 체력과 정신력이 나약해져서 그런것일 수도 있고 진짜로 내 가치관이 변한 것일 수도 있다. 발이 다 나으면 다시 운동도하고 활기차게 살아 볼 생각이다. 되돌아보면, 별 것 아닌일에도 너무 스트레스받고 앞 일을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것에 노력을 다했던 것 같다. 그게 아마 큰 병을 만들었지 않을까. 너무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충실하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로 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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