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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판 - 베르나르 베르베르
    독서 2020. 11. 23. 22:17

     

     친구 결혼식 참석차 KTX를 타고 부산에 갈 일이 있었다. 약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를 기차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당연스럽게도 기차 안에서 무엇을 할 지를 생각했다. 문득 해외여행지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책을 읽던 것이 생각이나서 서울역 안의 서점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다 읽을 수 있는책을 찾자."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기차에서의 시간을 제외한 부산에서의 여정은 친구과 함께하기로 되어있어 긴 책은 무리였다. 그 생각으로 서점 안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이다. "나무"로 처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접했고 고등학생시절에 "신"과 "파피용"도 읽었다. 나무는 단편집이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않고 신과 파피용은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기차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기에 다른 것을 더 둘러볼 시간이 없어 "심판"을 읽기로 하고 책을 집어 계산을 했다.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뿔싸, 내가 책을 사기 전에 한번도 책을 펼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릴때 읽은 나무나 신, 파피용의 내용을 생각하기 전에 책이나 한번 펼쳐볼껄... 이 책은 희곡 형식으로 쓰인 책이었다.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베르베르가 쓴 두 번째 희곡이라고 한다. 이 책의 큰 줄거리는 주인공 "아나톨"이 죽은 뒤 사후세계에서 다시 환생을 할지 천국에 갈지에 대한 재판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아나톨을 생전부터 지켜봐왔던 수호천사 "카롤린"이 아나톨의 편에서 재판을 도와주고 검사 "베르트랑"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아나톨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간다. 판사 "가브리엘"은 천상의 기준에서 아나톨의 전생을 판단하여 천국으로 갈지 지상으로 돌아갈지를 판결한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나라 웹툰인 "신과함께"와 유사한 설정을 하고있어 두 작품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신과함께 역시 주인공이 죽고 생전의 삶에 대해서 판결을 받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염라대왕등 어디서 들어본 듯한 전설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갖가지 지옥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TV로 주인공의 현생을 다시 재조명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현생에서 저질렀던 실수(교통규칙 위반, 남에게 상처를 준 일 등)를 재판에 활용하는 장면을 보며 신과함께의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 또한, 수호천사 카롤린이 주인공의 편에서 변호해주는 것을 보며 신과함께의 "진기한"변호사와 비슷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아나톨이 판사 가브리엘에게 재판 쉬는시간에 개수작을 거는 등의 장면(가브리엘의 마음을 얻어 천국을 가고자 한다)이 등장하는데 신과함께의 지옥대왕들의 권위와 위용을 생각했을때 신과함께에서는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설정을 하고 있더라도 그 디테일에 차이가 있고 문화적으로도 두 작품이 다르다는 점이 보여 흥미로웠다.

     둘째, 지상으로 돌아갈 경우 전생의 재판에서 다음 생을 결정할 수 있다. 만약 망자가 천국으로 가지 못할 경우 환생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다음생에서의 부모, 성별, 타고난 재능, 장단점, 결혼, 죽음 등 앞으로 벌어질 중요한 사건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이 점이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래의 대사 때문이다.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가는거에요.

     

    전생의 재판에서 자기가 선택해놓은 태생적인 재능, 장단점은 사실 25퍼센트의 영향력밖에 끼치지 못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것들도 25퍼센트의 영향력밖에 끼치지 못한다. 현생에서의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전생에서 정해둔, 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운명과 맞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전달하려는 점이 본인의 의지만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만 타고난 재능을 탐색하여 알아내고 그것을 꽃 피우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나톨의 재판 과정에서도 자신의 카르마를 얼마나 잘 살려냈는가에 대해 판결을 받는 부분 등장한다. 연극쪽에 재능을 타고난 아나톨은 전생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 점은 재판과정에서 비판을 받게된다. 또한 자신이 전생에 점지해둔 여성에게 반하고도 자신감이 부족하여 결국 마음을 얻지 못하는데 이 점도 재판에 좋지 않게 작용한다. 내가 여태껏 보거나 읽어왔던 작품들 중 죽어서 재판을 받는 설정의 작품들은 모두 현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도 유전, 카르마, 자유의지라는 세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주인공의 전생을 복기하면서 결국 "열심히 살아라, 망설이지 말아라, 현재에 충실해라"는 말을 하고싶은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기차는 대구정도에 와있었다. 아마 두 시간정도 걸려 다 읽었던 것 같다. 희곡작품이라서 내용전개가 빨라서 읽기 쉬웠고 지시문이 곁들여져있어 각 인물들의 의중을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꽤 오랜만에 다시 독서를 하는 나에게 알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은 직후에 책의 여운이 남아 내가 기차에서 책을 읽을 생각을 하게 된 것, 서점에서 유독 이 책의 파란 표지가 눈에 들어온 것 또한 전생의 내가 정해둔 카르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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